좋은 글의 조건
2023


언젠가부터 좀처럼 생각이라는 것을 하던대로 할 수가 없다. 뭔가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쉽게 쓸 수가 없다. 마음 속에 활자가 중력을 잃고 떠다닌다. 쓰려고 했던 모든 것이 말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 또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사실 아무래도 상관은 없다. 다만 애꿎은 손가락만 지웠다 썼다를 반복하느라 바쁠 뿐, 나는 그냥 그 상태를 지켜본다. 손가락이 알아서 글을 쓸 수 있다면 정말 멋진 글을 쓸 수 있을텐데.

손가락이 알아서 글을 쓸 수 있다면.. 이라는 글을 써놓고 괜히 마음이 우쭐해진다. 그런 멋진 생각을 하다니. 자꾸 그 문장을 들여다본다. 그런 내가 싫다. 안경을 벗고 자판을 두드리기로 한다. 화면에 아무 활자도 보이지가 않는다. 아마 나는 오타를 칠 수도 있을 것이다. 커서가 깜빡이는 것이 보인다. 글이 한자한자씩 늘어나는게 보인다. 다만 나는 방금전에 내가 무은 말.. 그러니까 어떤 내용의 글을 적었는지 알아 볼 수가 없다. 나는 감각적으로 주절거린리고 있다.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카페의 모든 사람들은 눈코입을 잃은 괴물이 되었다. 나는 모니터 가까이 눈을 대어 내가 뭐라고 쓰고 있는지 읽고싶어 하는 내 몸을 간신이 절제한다. 글은 눈으롯도 쓰는거구나.  처름으로 깨닫는다. 커서의 깜빡이이 나를 긴장하게 한다. ㅐ가  화면에서 보는 유일하게 제어할 수 없는 움직임이다. 나는 그것을 살리기 위해 계속 손가락을 부단히 움직여야할 것만 같다. 대략 여럭ㅂ에서 아홉줄 겆ㅇ도 글을 쓴 것 같은데 내가 무엇에 대해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이 글은 좋은 글을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