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18
아메리카노 커피 믹스에 연유를 타 마시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마실 때는 달달하니 참 좋은데, 먹고나면 입안의 텁텁함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이걸 핑계로 끊어야겠다. 


2024. 11. 18
생일선물로 이북리더기를 받았다. 생각보다 이북리더기는 꽤 비쌌다. 내가 지금까지 올해 종이책을 사는데 쓴 돈과 거의 비슷했다고 해야할까. 그럼에도 이북리더기가 하나는 있어야겠다고 판단한 이유는 읽고픈 원서들이 많은데 종이책은 가격도 부담될 뿐더러 배송에 시간이 걸리는 것이 싫었고, 아이패드로는 눈이 아프고, 모니터로 보기엔 집중이 되지 않는다는 이상한 논리에 의한 것이었다. 막상 받아서 써보니 생각보다 잔상이 많이 남는 게 조금 거슬리지만 확실히 눈이 아프진 않아서 좋다. 그래도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내 생일은 언제부턴가 항상 블랙프라이데이 기간이어서, 프로모션을 활용한 구매 덕분에 나는 전자책 정가에 구독권을 받았다. 그 구독권으로 어떤 책들을 볼 수 있는지 찾아보다가 문득 넷플릭스에서 포스터와 간략한 설명만 읽고나서 찜만 해놓고 보지 않은 수많은 영화들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한권의 책을 (경제적으로) 보기 위해서 했던 노력들-밀리의 서재 검색, 도서관 자료 검색, 알라딘 중고책 검색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이제는 책을 가상의 책장에 담는 것만으로도 다 읽은 것 같은 거짓의 감상으로 변할 것이 두려워졌다. 그리고 갑자기 진짜 읽고 싶은 책은 이북으로는 찾을 수 없기를 바라는 이상한 마음이 생겨버렸다.



2024. 11. 07
아.
중요한 순간을 놓치고 말았다는 확신이 주는 종잇장 같은 날카로움에 손가락이 베인다. 이런 일이 있을때면 늘 그랬듯이 내 몸은 스스로를 굳혀 잠시 시간을 흘려보냄으로써 당황스러운 감정이 주는 불편함을 녹인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나는 허공이 손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놓인 잔잔한 벽지의 무늬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2024. 11. 04
읽기에 통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벌써 며칠째, 몇 번이나 책을 펼쳐 집중해 보려고 했는데 이번에도 또 후루룩 책장을 넘겨 덮어버리고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본다. 그 상태로 괜히 몸을 흔들어 책상 의자를 좌우로 돌려보기도 하면서.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오랜만에 영화관에 갔던 기억이 난다. 그래.. 나는 거기서 그 영화를 본 이후로 책과 멀어진 것 같다. 참 이상한 영화였다. 영화를 보면서 태어나 처음으로 영화를 보면서 내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기분.. 아니 그 정도를 넘어서 나는 자신의 소명이 마치 영화를 만드는 일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어리석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이상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기운에 휩쓸려 나는 머릿속으로 이미 내 영화를 구상하고 있었다. 그것도 영화를 보면서. 영화를 보는 것과 그리는 것. 그 두 가지의 다른 일이 어떻게 마법처럼 시간 속에서 그토록 매끄럽게 엮일 수 있었는지 지금도 도저히 모르겠다. 하지만 아쉽게도 엔딩크레딧이 떠오를 때까지 나는 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볼 수는 없었다. 몇 가지 생각이 떠올랐지만 아무것도 마음에 들지가 않았다. 금방 끝나지 않을 고민임을 직감한 것도 잠시, 영화관 건물 모퉁이를 돌면 바로 있는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그 짧은 시간에 나는 그 마법에서 완전히 풀려버리고 말았다. 그리고서 지금까지 잊고 있었다. 나는 뒤늦게 생각한다. 아무래도 그 영화의 엔딩에 대해서 그때 어느 정도 갈피라도 잡아두어야 했던 것이 아닐까.. 그 때, 거기서 모든 것이 멈춰버린 것 같다고. 스스로 만족할 만한 결말이 생각나면 책을 다시 마주할 수 있으려나 싶다. 그때까진 계속 이렇게 허공을 바라봐야겠지.  


2024. 10. 29
작업을 하거나 전시를 준비하는 때마다 유독 자주 듣게되는 음악들이 있다.
벌써 많이 잊어버렸는데 더 잊어버리기 전에 적어둔다.

Error without Error (2023) - The Disintegration Loops by William Basinski (2002)
www.youtube.com/watch?v=mjnAE5go9dI

Viewers’ Conditions (2023) - Mallet Quartet by Steve Reich (Sandbox Percussion Ver.)
www.youtube.com/watch?v=uH9ku-52PUA

Vanishing Act (2024) - Vanishing Act by Lou Reed (2003) 
www.youtube.com/watch?v=9As6iYfdlCY&list=RDAlftMNmDH00&index=2


2023
지도를 그리면 사라지는 장소

꿈에 대해 글을 쓰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어느 낯선 카페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곳이 문이 닫을 때가 되자 그 사람이 한 잔 더 하자며 자기가 아는 곳으로 가자고 했다. 밖엔 비가 무섭게 오고 있었다. 가방도 없던 나는 입고 있던 반팔 티셔츠 안으로 노트북을 넣어 품에 안고 그 사람을 따라갔다. 거리가 그리 멀지는 않았다. 그와 나는 엄청 가파른 길을 잠시 올랐고, 길을 한번 건넜고, 저층의 낡은 아파트 단지 앞을 지나갔다. 가면서 그 사람은 우리가 가는 곳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더 맨션이라고 했다. 별로 특이한 이름도 아니었는데 뭔가 궁금증을 자아냈다. 아마도 그 사람이 내가 그곳을 분명 좋아할 거라는 내색을 해서 그랬던 것 같다. 어느 낡은 건물 1층 구석에 희고 깨끗하게 칠해진 마감 위로 더 맨션이라는 영문 글자로 된 간판이 보였다. 건물과 어울리지 않게 외관이 세련된 느낌이었다. 사방이 막혀있어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그곳이 어떤 곳이라는 의심을 할 겨를도 없이 매섭게 내리는 비를 피하려는 본능에 따라 나는 그곳에 들어갔다.

들어선 순간 앞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눈을 감은 것 같기도 하고. 캄캄한 공간에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아주 잠시의 시간이 지나갔다. 이상하게도 전혀 무섭거나 두려운 기분은 들지 않았다. 아마 5초 정도 지나서였을까. 어두운 파랑과 청록이 뒤섞인 색의 어두운 빛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첫인상은 굉장히 멋지고 고급스러운 바 같았다. 드문드문 아주 옅은 오렌지색으로 얇은 선처럼 빛나고 있었는데 그것이 벽에 있는 것인지 공중에 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은 오렌지색 선들은 분명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는데 어두운 주변을 밝힐 정도는 아니었다.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한지 알 수 없어서 신기했다. 그냥 한참을 바라봤다. 몽환적이었다. 하지만 요란스럽지 않고 차분했다. 주변을 어느 정도 파악하자 나 자신에게로 감각이 옮겨졌다. 문을 넘어선 이후에 움직인 기억이 없는데, 나는 공간 가운데 놓인 큰 테이블에 한쪽 손을 올리고, 그 테이블을 둘러싼 여러 개의 스툴 중 하나에 앉아 있었다.

나를 이곳에 데려온 사람은 안개 너머에서 낯선 사람을 데려왔다. 카드 뭉치를 꺼내는 것을 보아 타로를 봐주는 사람인 것 같았다. 카드를 한 장 뒤집어 테이블에 놓더니 같이 온 사람에게 좋은 얘기를 잔뜩 해주었다. 그리고 나를 보며 카드를 한 장 뒤집더니 약간 놀라면서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 사람의 상체가 순간 나에게서 멀어졌다. 무슨 얘길 해줄지 궁금했다.

그때쯤 나는 남동생의 출근 준비하는 소리에 살짝 깨고 말았다. 그것이 꿈인 걸 알아차렸을 때는 꿈속에, 그러니까 더 맨션에 더 머무르고 싶어서 억지로 잠을 청했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점심이 지나도록 누워있었다. 개인전을 준비하고, 내일이 마감인 공모 지원을 준비하려면 할 일이 많은데, 도무지 꿈속의 그 오묘한 빛과 어둠의 공간이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분명 그곳은 어둡게 빛나고 있었다. (어둡게 빛나는 이라는 표현이 맘에 들지 않아서 몇 번을 썼다 지웠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꿈을 생각할 때마다 마치 꿈이 영상처럼 재생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 영상은 내 눈으로 바라본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 공간에 있는 나를 제삼자의 시점에서 바라본 것을 보여준다. 도대체 어느 순간에 편집된 것일까. 현실감이 덜하다. 다시 그것을 현실처럼 느끼고 싶고,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 도무지 뭔가 중요한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는 지금 노트북 스크린을 보면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지만 사실 나는 도대체 몇 번인지 셀 수 없을 만큼 계속해서 꿈을 반복해서 보고 있다. 반복하면서 꿈을 보니까 꿈을 꿀 때는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생각이 떠오르고,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 보인다.


  • 가시광선 말고 다른 파장을 본다면 이런 느낌이 들까?
  • 공간에 그림자가 없다. 모든 것이 빛나고 있었던 것일까? 그래서 내가 어둡게 빛난다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었나?
  • 그 공간과 가장 비슷한 느낌을 주는 건 아마도 오로라가 아닐까 싶다. (나는 실제로 오로라를 본 적은 없다.) 오로라에서 보이는 색상 스펙트럼 중 오로지 푸른색 계열 색상을 기반으로 한 짙은 색으로 빛나는 공간에 살구색 나는 은은한 빛들이 드문드문 훨씬 각지고 정돈된 느낌으로 있었다.


벌써 네 시다. 슬프게도 글이 점차 길어질수록 꿈이 바래져 간다. 글 또는 이미지. 하나의 현상은 절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동시에 존재한다면 그것들은 모두 다른 것이다.


2023
좋은 글의 조건

언젠가부터 좀처럼 생각이라는 것을 하던대로 할 수가 없다. 뭔가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쉽게 쓸 수가 없다. 마음 속에 활자가 중력을 잃고 떠다닌다. 쓰려고 했던 모든 것이 말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 또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사실 아무래도 상관은 없다. 다만 애꿎은 손가락만 지웠다 썼다를 반복하느라 바쁠 뿐, 나는 그냥 그 상태를 지켜본다. 손가락이 알아서 글을 쓸 수 있다면 정말 멋진 글을 쓸 수 있을텐데.

손가락이 알아서 글을 쓸 수 있다면.. 이라는 글을 써놓고 괜히 마음이 우쭐해진다. 그런 멋진 생각을 하다니. 자꾸 그 문장을 들여다본다. 그런 내가 싫다. 안경을 벗고 자판을 두드리기로 한다. 화면에 아무 활자도 보이지가 않는다. 아마 나는 오타를 칠 수도 있을 것이다. 커서가 깜빡이는 것이 보인다. 글이 한자한자씩 늘어나는게 보인다. 다만 나는 방금전에 내가 무은 말.. 그러니까 어떤 내용의 글을 적었는지 알아 볼 수가 없다. 나는 감각적으로 주절거린리고 있다.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카페의 모든 사람들은 눈코입을 잃은 괴물이 되었다. 나는 모니터 가까이 눈을 대어 내가 뭐라고 쓰고 있는지 읽고싶어 하는 내 몸을 간신이 절제한다. 글은 눈으롯도 쓰는거구나.  처름으로 깨닫는다. 커서의 깜빡이이 나를 긴장하게 한다. ㅐ가  화면에서 보는 유일하게 제어할 수 없는 움직임이다. 나는 그것을 살리기 위해 계속 손가락을 부단히 움직여야할 것만 같다. 대략 여럭ㅂ에서 아홉줄 겆ㅇ도 글을 쓴 것 같은데 내가 무엇에 대해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이 글은 좋은 글을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