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5. 11
오늘 나는 느낌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 내 산문의 형태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나는 어떻게 쓰는가? 나는, 다른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허황된 소망을 갖고 있었다. 나만의 방식과 나만의 규범을 갖고 싶다는 소망이었다. 물론 나는 그런 방식이나 규범을 갖고 있지 않으면서도 글을 썼다. 하지만 그런 글은 다른 사람들의 글과 구별되지 않는다. 

오후의 자기분석을 통해서 나는 내 글의 스타일이 두 가지 기본 원칙 위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즉시 이 원칙들을, 고전주의 기법에 따라, 전반적인 글쓰기 기술 전체를 받쳐주는 보편타당한 토대로 삼았다. 그 원칙이란 다음과 같다. 인간이 느끼는 것을 정확히 인간이 느끼는 느낌 그대로 표현한다. 그것이 명확하다면 투명하고 명확하게, 그것이 불명확하다면 불명확하게, 그것이 혼돈에 싸여 있다면 혼돈스럽게. 그리고 문법을 법칙이 아닌 도구로 이해한다. 


...

나는 나를 있다. 


-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배수아 옮김, 봄날의 책, 2014. 164p


2025. 05
얼마전 동문인 작가가 기획한 단체전에 참여했다. 첫날 대형 캐리어에 가득 싣고간 장비를 펼쳐놓고 있는 나를 보시며 갤러리 대표님이 이런 (다양한 기계장비가  필요한 설치)작품은 가격이 얼마나 하냐고 물으셨다. 진심으로 누가 살 것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생각해본적이 없다고 말씀드렸더니 꽤나 놀란 눈치로 작가들은 보통 그런 것을 다 생각하고 작품을 만들지 않느냐고 다시 물어보셨다. 한달도 더 지난 일이라 그 때 내가 뭐라 답했는지는 모르겠다.

그 잠깐의 대화가 꽤나 마음에 남아서 한동안 누군가를 만날 때 마다 작품을 사본 적이 있는지, 또는 그에 앞서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지 물었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가 정작 내가 작품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예외가 있을 수 있으니, 거의라고 표현했다.) 내가 갖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으니, 누군가 나의 작품을 가지고 싶어할 거라고 생각하기도 어려웠던게 아닐까 싶다.

정리의 손길을 기다리는 책상 위에 서울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이 쌓여있다. 밑줄을 긋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대부분 빌려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실 빌려놓고도 읽지 않고 그대로 반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기간 안에 다 못 읽으면 두세번 빌릴 수도 있고, 마음에 드는 내용은 필사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어떤 책을 계속 찾게 된다면... 그 책은 사야한다. 그런 책같은 작품이 내게도 나타날까. 



2025. 04. 28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너무나 잘 알고있다고 생각해서
가만히 생각에 잠길 겨를조차
한번 내어준 적 없는 많은 것들은 모두 이름을 가지고 있구나.



2025. 03. 10
만약 내가 글을 쓰게 된다면, 어떤 최면 상태 덕분에, 나 자신을 벗어나서 최고로 아름다운 걸작들 가운데 하나를 낳기보다는 완전히 의식적으로, 그리고 전적인 명석함 속에서 무언가 부실한 것을 쓰기를 훨씬 더 좋아할 것이다.

- 폴 발레리

2025. 02. 23

오늘 문득 내 시야에 책장 한 구석에 나란히 놓인 몇 권의 시집이 들어왔다. 꺼내보니 그것들은 대부분 받은지 최소 5년은 된, 애정의 메세지가 담긴 선물이었다. 선물을 준 그들이 여전히 나와 가깝게 지낸다는 사실이 참 신기하다. 언젠가 시를 아끼게 될 나의 미래를 나보다 먼저 알아차린 나의 소중한 사람들.



작년 여름, 전시를 준비하며 알게된 시인과 처음으로 카페에서 만난 날, 그분은 나에게 물었다.

시를 좋아하시나요?

시인을 앞에 두고 하기에 적절한 말은 아니었으나,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 속에 담긴 진실을 알아차릴 것 같은 섬세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 솔직히 나는 아직은 시를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가능성을 열어둔 그 답변이 여전히 만족스럽다.



2025.02.22
Blank & Jones - Pure Shores
뮤직비디오는 절대 보지 말고 음악만 듣기. 


2025. 01. 27
좋은 아침입니다.
밖을 보니 아마 밤새 눈이 내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싸락눈이 내리고 있네요.

...

시계를 보니 책상 앞에 앉은 지 벌써 한 시간 반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한 시간 반 전에 본 하늘과 같습니다. 여전히 초점 둘 곳 없는 거대하고 밝은 회색이 계속 같은 모습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시간은 어쩌면 흐르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거대하게 펼쳐진 회색에 (분명 어딘가에 떠 있을) 가려진 해가 어디 있는지도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내리는 눈조차 보이지 않을만큼 어두워져야만이 그것이 종일 제 곁에 있었다는 알아차리게 되겠죠. 아시다시피 이런 날은 아주 드물게 옵니다. 운 좋게 아무것도 측정할 수 없고, 측정하는 의미조차 없어지는 날이죠. 하지만 저는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겨울만 되면 무기력해지는 제 상태가 여기서 비롯된 것이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


글을 쓰는 동안 눈이 계속 오다 그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럼에도 고요함은 지속되었습니다. 이제는 저의 무기력함에 온전히 시간을 내어줄 때가 된 것 같네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P.S. 돌멩이나 먼지 알갱이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내 안에서 영혼의 눈물을 흘린다.
-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배수아 옮김, 봄날의 책, 2014



2024. 11. 07
아.
중요한 순간을 놓치고 말았다는 확신이 주는 종잇장 같은 날카로움에 손가락이 베인다. 이런 일이 있을때면 늘 그랬듯이 내 몸은 스스로를 굳혀 시간을 잠시 흘려보낸다. 당황스러운 감정이 주는 불편함을 녹일 시간을 버는 것이다. 풀어진 몸의 고개를 들고나서야 나는 허공이 손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놓인 잔잔한 벽지의 무늬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2024. 11. 04
읽기에 통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벌써 며칠째, 몇 번이나 책을 펼쳐 집중해 보려고 했는데 이번에도 또 후루룩 책장을 넘겨 덮어버리고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본다. 그 상태로 괜히 몸을 흔들어 책상 의자를 좌우로 돌려보기도 하면서.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오랜만에 영화관에 갔던 기억이 난다. 그래.. 나는 거기서 그 영화를 본 이후로 책과 멀어진 것 같다. 참 이상한 영화였다. 영화를 보면서 태어나 처음으로 영화를 보면서 내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기분.. 아니 그 정도를 넘어서 나는 자신의 소명이 마치 영화를 만드는 일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어리석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이상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기운에 휩쓸려 나는 머릿속으로 이미 내 영화를 구상하고 있었다. 그것도 영화를 보면서. 영화를 보는 것과 그리는 것. 그 두 가지의 다른 일이 어떻게 마법처럼 시간 속에서 그토록 매끄럽게 엮일 수 있었는지 지금도 도저히 모르겠다. 하지만 아쉽게도 엔딩크레딧이 떠오를 때까지 나는 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볼 수는 없었다. 몇 가지 생각이 떠올랐지만 아무것도 마음에 들지가 않았다. 금방 끝나지 않을 고민임을 직감한 것도 잠시, 영화관 건물 모퉁이를 돌면 바로 있는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그 짧은 시간에 나는 그 마법에서 완전히 풀려버리고 말았다. 그리고서 지금까지 잊고 있었다. 나는 뒤늦게 생각한다. 아무래도 그 영화의 엔딩에 대해서 그때 어느 정도 갈피라도 잡아두어야 했던 것이 아닐까.. 그 때, 거기서 모든 것이 멈춰버린 것 같다고. 스스로 만족할 만한 결말이 생각나면 책을 다시 마주할 수 있으려나 싶다. 그때까진 계속 이렇게 허공을 바라봐야겠지.  



2024. 10. 29
작업을 하거나 전시를 준비하는 때마다 유독 자주 듣게되는 음악들이 있다.
벌써 많이 잊어버렸는데 더 잊어버리기 전에 적어둔다.

Error without Error (2023) - The Disintegration Loops by William Basinski (2002)
www.youtube.com/watch?v=mjnAE5go9dI

Viewers’ Conditions (2023) - Mallet Quartet by Steve Reich (Sandbox Percussion Ver.)
www.youtube.com/watch?v=uH9ku-52PUA

Vanishing Act (2024) - Vanishing Act by Lou Reed (2003) 
www.youtube.com/watch?v=9As6iYfdlCY&list=RDAlftMNmDH00&index=2





2024. 03
she says
i give up on closing my eyes to see nothing
with her eyes closed

triangles made of points that extend toward darkness, light, and intermission
perch precariously on her thin lashes

she fills her field of vision with an empty wall
until all pointed shapes are volatilized like full stops of sentences here

time passes
but only the vanished knows how much it passes

in this bright darkness
traceless letters she carefully buried
end up shining in the color of shade in vain

while somberly luminescence dies down
a silent yell repeats via a certain wavelength
we have not been unseen yet enough
 
she nods lethargically


i am in the room of a visual artist who is tired of seeing



depersonalization (title in 2025)



2023
지도를 그리면 사라지는 장소

꿈에 대해 글을 쓰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어느 낯선 카페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곳이 문이 닫을 때가 되자 그 사람이 한 잔 더 하자며 자기가 아는 곳으로 가자고 했다. 밖엔 비가 무섭게 오고 있었다. 가방도 없던 나는 입고 있던 반팔 티셔츠 안으로 노트북을 넣어 품에 안고 그 사람을 따라갔다. 거리가 그리 멀지는 않았다. 그와 나는 엄청 가파른 길을 잠시 올랐고, 길을 한번 건넜고, 저층의 낡은 아파트 단지 앞을 지나갔다. 가면서 그 사람은 우리가 가는 곳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더 맨션이라고 했다. 별로 특이한 이름도 아니었는데 뭔가 궁금증을 자아냈다. 아마도 그 사람이 내가 그곳을 분명 좋아할 거라는 내색을 해서 그랬던 것 같다. 어느 낡은 건물 1층 구석에 희고 깨끗하게 칠해진 마감 위로 더 맨션이라는 영문 글자로 된 간판이 보였다. 건물과 어울리지 않게 외관이 세련된 느낌이었다. 사방이 막혀있어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그곳이 어떤 곳이라는 의심을 할 겨를도 없이 매섭게 내리는 비를 피하려는 본능에 따라 나는 그곳에 들어갔다.

들어선 순간 앞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눈을 감은 것 같기도 하고. 캄캄한 공간에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아주 잠시의 시간이 지나갔다. 이상하게도 전혀 무섭거나 두려운 기분은 들지 않았다. 아마 5초 정도 지나서였을까. 어두운 파랑과 청록이 뒤섞인 색의 어두운 빛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첫인상은 굉장히 멋지고 고급스러운 바 같았다. 드문드문 아주 옅은 오렌지색으로 얇은 선처럼 빛나고 있었는데 그것이 벽에 있는 것인지 공중에 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은 오렌지색 선들은 분명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는데 어두운 주변을 밝힐 정도는 아니었다.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한지 알 수 없어서 신기했다. 그냥 한참을 바라봤다. 몽환적이었다. 하지만 요란스럽지 않고 차분했다. 주변을 어느 정도 파악하자 나 자신에게로 감각이 옮겨졌다. 문을 넘어선 이후에 움직인 기억이 없는데, 나는 공간 가운데 놓인 큰 테이블에 한쪽 손을 올리고, 그 테이블을 둘러싼 여러 개의 스툴 중 하나에 앉아 있었다.

나를 이곳에 데려온 사람은 안개 너머에서 낯선 사람을 데려왔다. 카드 뭉치를 꺼내는 것을 보아 타로를 봐주는 사람인 것 같았다. 카드를 한 장 뒤집어 테이블에 놓더니 같이 온 사람에게 좋은 얘기를 잔뜩 해주었다. 그리고 나를 보며 카드를 한 장 뒤집더니 약간 놀라면서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 사람의 상체가 순간 나에게서 멀어졌다. 무슨 얘길 해줄지 궁금했다.

그때쯤 나는 남동생의 출근 준비하는 소리에 살짝 깨고 말았다. 그것이 꿈인 걸 알아차렸을 때는 꿈속에, 그러니까 더 맨션에 더 머무르고 싶어서 억지로 잠을 청했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점심이 지나도록 누워있었다. 개인전을 준비하고, 내일이 마감인 공모 지원을 준비하려면 할 일이 많은데, 도무지 꿈속의 그 오묘한 빛과 어둠의 공간이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분명 그곳은 어둡게 빛나고 있었다. (어둡게 빛나는 이라는 표현이 맘에 들지 않아서 몇 번을 썼다 지웠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꿈을 생각할 때마다 마치 꿈이 영상처럼 재생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 영상은 내 눈으로 바라본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 공간에 있는 나를 제삼자의 시점에서 바라본 것을 보여준다. 도대체 어느 순간에 편집된 것일까. 현실감이 덜하다. 다시 그것을 현실처럼 느끼고 싶고,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 도무지 뭔가 중요한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는 지금 노트북 스크린을 보면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지만 사실 나는 도대체 몇 번인지 셀 수 없을 만큼 계속해서 꿈을 반복해서 보고 있다. 반복하면서 꿈을 보니까 꿈을 꿀 때는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생각이 떠오르고,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 보인다.


  • 가시광선 말고 다른 파장을 본다면 이런 느낌이 들까?
  • 공간에 그림자가 없다. 모든 것이 빛나고 있었던 것일까? 그래서 내가 어둡게 빛난다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었나?
  • 그 공간과 가장 비슷한 느낌을 주는 건 아마도 오로라가 아닐까 싶다. (나는 실제로 오로라를 본 적은 없다.) 오로라에서 보이는 색상 스펙트럼 중 오로지 푸른색 계열 색상을 기반으로 한 짙은 색으로 빛나는 공간에 살구색 나는 은은한 빛들이 드문드문 훨씬 각지고 정돈된 느낌으로 있었다.


벌써 네 시다. 슬프게도 글이 점차 길어질수록 꿈이 바래져 간다. 글 또는 이미지. 하나의 현상은 절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동시에 존재한다면 그것들은 모두 다른 것이다.



2023
좋은 글의 조건

언젠가부터 좀처럼 생각이라는 것을 하던대로 할 수가 없다. 뭔가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쉽게 쓸 수가 없다. 마음 속에 활자가 중력을 잃고 떠다닌다. 쓰려고 했던 모든 것이 말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 또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사실 아무래도 상관은 없다. 다만 애꿎은 손가락만 지웠다 썼다를 반복하느라 바쁠 뿐, 나는 그냥 그 상태를 지켜본다. 손가락이 알아서 글을 쓸 수 있다면 정말 멋진 글을 쓸 수 있을텐데.

손가락이 알아서 글을 쓸 수 있다면.. 이라는 글을 써놓고 괜히 마음이 우쭐해진다. 그런 멋진 생각을 하다니. 자꾸 그 문장을 들여다본다. 그런 내가 싫다. 안경을 벗고 자판을 두드리기로 한다. 화면에 아무 활자도 보이지가 않는다. 아마 나는 오타를 칠 수도 있을 것이다. 커서가 깜빡이는 것이 보인다. 글이 한자한자씩 늘어나는게 보인다. 다만 나는 방금전에 내가 무은 말.. 그러니까 어떤 내용의 글을 적었는지 알아 볼 수가 없다. 나는 감각적으로 주절거린리고 있다.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카페의 모든 사람들은 눈코입을 잃은 괴물이 되었다. 나는 모니터 가까이 눈을 대어 내가 뭐라고 쓰고 있는지 읽고싶어 하는 내 몸을 간신이 절제한다. 글은 눈으롯도 쓰는거구나.  처름으로 깨닫는다. 커서의 깜빡이이 나를 긴장하게 한다. ㅐ가  화면에서 보는 유일하게 제어할 수 없는 움직임이다. 나는 그것을 살리기 위해 계속 손가락을 부단히 움직여야할 것만 같다. 대략 여럭ㅂ에서 아홉줄 겆ㅇ도 글을 쓴 것 같은데 내가 무엇에 대해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이 글은 좋은 글을 수 밖에 없다.